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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 김현기 목사 동광교회
2023-04-11 13:39:18
윤성천
조회수   80

사무엘상 4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블레셋과 전쟁에서 이용하려고 하다가 언약궤를 빼앗기고, 사무엘상 5장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언약궤를 빼앗아 다곤의 신당에 놓았다가 다곤 신이 머리과 두 손이 잘려서 몸통만 남는 일이 있었고, 벳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 안을 보다가 오만 칠십명이 죽었는데 본문 20절에 벳세베스 사람들이 “여호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누가 설 수 있겠느냐?” 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귀한 일이다. 
출애굽기 20장 3절에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앞에 서면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아 십계명도 지킬 수 있고 믿는 일을 잘할 수 있다. 
一. 언약궤가 무엇인가?
1.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출애굽기 25장에 언약궤를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아카시아나무로 궤를 만들어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으로 만들어서 순금을 입히고 궤 안에는 십계명을 기록한 돌비석,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를 넣고(히 9:4-5) 그 위에는 속죄 판을 만들어 그룹들의 날개가 양쪽에서 서로 연결되게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언약궤 속죄판(속죄소)에 7월 10일 대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서 속죄판에 피를 뿌려서 죄를 속죄한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3.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신령한 양식을 주신다.
언약궤 안에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는 돌 비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생명력을 가리키고, 금 항아리에 담긴 만나는 신령한 양식을 의미한다. 교회는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 주는 곳이다.
二. 언약궤를 잘못 다룬 사람들
1. 언약궤를 이용하는 사람들
사무엘상 4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서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했다. 이전에 조상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서 요단강을 건너기도 하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도 한 경험이 있다. 이것은 언약궤를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전쟁에서 지고 있을 때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되는데 회개할 생각은 안하고 언약궤를 이용하려고 하다가 언약궤를 빼앗기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도들의 모임, 교회를 많이 상징하는데 바른 신앙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용하려다가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이용하려는 사람만 어려움을 당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분이 아니시다. 
2. 언약궤를 짓밟는 사람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다곤 신당으로 가져가 다곤 곁에 두었는데, 다곤이 여호와 궤 앞에서 쓰러진 채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다시 제자리에 세워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보니,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쓰러져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는데 다곤의 머리와 두 손은 잘려서 문지방 위에 있고 오직 몸통만 남아 있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교회를 짓밟는 사람들이 있다. 마귀가 역사하여 교회를 아주 짓밟는다. 그런데 교회가 짓밟히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앙 자유를 빼앗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세력들은 어려움을 많이 당한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도와줘야지 막으려고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괴롭히면 하나님께서 안 기뻐하셔서 어려움을 당한다. 교회를 짓밟아 버리려고 하는 그런 세력을 하나님께서 다스린다. 출애굽기에 보면 바로 왕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못나가도록 하므로 열 가지 재앙이 쏟아지도록 하신다. 요한계시록 11장 5절-6절에 두 증인이 나오는데 두 증인은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를 괴롭히면 하나님은 어떡하느냐? 불이 나오게 하고 그 다음에는 비가 오지 않게 한다. 비가 안 오니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물이 변해 피가 된다. 행복이 변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된다. 
누구라도 교회를 손해를 끼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괴롭히고, 교회를 탄압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한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면 흑암이 들어와서 사람들이 어두운 말, 어두운 행동을 하므로 사회가 경직되고 모든 면에서 어려워진다.
3. 언약궤를 조심스럽게 다루지 못한 사람들
벳세메스 사람들이 빼앗긴 언약궤가 돌아오니 너무 기뻐서 언약궤 안을 보다가 오만 칠십 명이 죽었다. 하나님의 궤를 조심하지 않다가 어려움을 당한다. 이 사람들이 언약궤가 싫은 게 아니다. 너무 좋아서 언약궤 안을 보다가 사고가 났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은혜 받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참 복된 일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삼가 조심 안 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을 교훈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 나와서는 삼가 조심해야 한다. 
당회, 노회, 총회 때 큰소리친 사람이 결과가 안 좋다. 큰 소리가 나오는 자체가 저주가 임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싸우고 언성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멀리 떠나서 저주를 받아서 큰 소리가 나온다.
옛날에 기도 많이 하시는 목사님들은 강대상에 올라갈 때 아주 조심히 올라가신다. 강대상은 나무로 만든 궤짝이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선다고 생각하고 조심해서 강대상에 올라가신 것 같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언약궤를 소 수레에 싣고 가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자 웃사가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는데,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웃사가 하나님의 궤 앞에서 죽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교회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교회가 흔들릴 때 사람이 교회를 붙들려고 하면 그 사람은 죽는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삼가 조심해야 한다.
三. 하나님 앞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힘입어야 한다.
본문에서 언약궤를 옮기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이 나오다가 사무엘상 7장에 가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라고 하고 젖 먹는 어린 양을 잡아서 여호와께 온전한 번제로 드린 후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응답하셨다고 한다(삼상 7:9).
어린양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의 제물이 되셔서(요 1:29)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서 구속하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셔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실 것을 예표 한다.
사사시대 왕이 없어서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옳은 데로 행하므로 하나님의 징계로 언약궤를 빼앗기고, 빼앗긴 언약궤를 찾아오면서 사고도 생기므로 사무엘상 7장에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고, 사무엘상 8장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고, 9장에 왕을 세워서, 장차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라고 그림자로 보여주셨는데, 사람이 세운 사울왕은 실패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워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신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실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신다.
2.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된다.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문 날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이십 년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 온 족속이 여호와를 울며 찾았을 때, 사무엘이 말하기를 “만일 너희가 여호와께 전심으로 돌아오려면, 너희 중에서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오직 그분만을 섬겨라” 하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을 섬겼다.
사무엘이 말하기를 “이스라엘은 모두 미스바로 모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할 것이다.”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미스바에서 금식하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했습니다.” 회개하며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회개하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된다.
예레미야 29장 12절-13절 “너희가 나를 부르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 기도를 들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구하면 나를 만날 것이며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너희가 나를 찾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역대하 15장 2절 “아사 왕과 온 유다와 베냐민이여,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여호와를 찾으면 그분께서 너희를 만나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그분을 버리면 그분도 너희를 버리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면 만난다.
3.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살자.
신약 성경에는 “주 안에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 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앞에”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파네"로 "얼굴, 면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축복을 할 때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분의 얼굴을 네게 비추시고 네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분의 얼굴을 네게 향하여 드시고 네게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도 얼굴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 앞에 있으면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 주시고 복을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평강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된다. 
하나님이 항상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내 앞에 있다고 의식하며 주 안에서 성령의 교통을 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삼가 조심하며 긍휼의 마음으로 화목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어두움에 사로잡혀서 자기도 왜 그렇게 하는지 알지 못하고 한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은 우상 섬기지 않고 우상을 만들지도 않는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려고 하고 부모 공경하며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는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사람은 이미 간음했다고 한다. 음란한 마음이 들어 온 것은 하나님 앞을 떠났기 때문에 음란한 마음이 들어온 것이다.
누가 하나님 앞에 설수 있을까?
중대한 과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고 말하는 것은 외식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중간에 예수님을 모시고 대화를 하고, 일처리를 할 때도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을 하실까? 고민하고 조심해서 성령님의 지혜를 구하여 일처리를 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사무엘상 4장에서 7장까지 이 시대가 사사시대인데 이 시대는 암흑시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나서 우상을 섬기고, 레위인들이 타락을 하고 가치관의 혼돈이 와서 혼란한 가운데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11지파가 싸운다.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 지파가 두 번이나 진다.
형제 끼리 싸우면서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고발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형제끼리 싸울 수 없다. 서로 지체인데 형제끼리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신다고 생각하면서 형제들과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원수를 물리쳐주시며 평화가 깃들이도록 하신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 우리들의 숙제이다. 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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